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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09

만드는 사람이 연주할 때 — 제작과 연주의 순환

이규웅 · 대금 연주자 · 죽관악기 기능계승자

농사짓는 사람이 제일 좋은 요리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배추가 어느 밭 어느 고랑에서 자랐는지 아는 사람의 손맛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저는 대금을 만들고, 만든 대금을 붑니다. 이 두 가지 일을 함께해 온 사람으로서, 만드는 손과 부는 입이 서로를 어떻게 가르치는지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저는 2004년에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죽관악기 기능계승자로 지정되었습니다. 같은 해에 대금산조 이수자도 되었으니, 만드는 자격과 부는 자격을 한 해에 함께 얻은 셈입니다. 울산공예품대전에서 은상을 받은 것은 만드는 손으로 받은 상이고, 대통령상은 부는 숨으로 받은 상입니다. 저에게 이 둘은 처음부터 한 몸이었습니다.

연주하는 사람이 만들면 무엇이 다른가

공방에서 대금을 만들다 보면 하루에도 수십 번 악기를 입에 뭅니다. 지공을 조금 넓히고 불어 보고, 취구 각을 조금 다듬고 불어 보고, 관 속을 손보고 또 불어 봅니다. 자로 재는 치수는 기준일 뿐, 마지막 판정은 언제나 소리가 내립니다. 부는 사람이 아니면 이 판정을 스스로 내릴 수 없습니다.

특히 산조를 오래 분 사람은 악기에게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 압니다. 격렬하게 몰아칠 때 소리가 퍼지지 않고 버텨 주는지, 여린 농음에서 청이 섬세하게 따라와 주는지, 이런 것은 가락을 아는 입만이 검사할 수 있습니다. 제가 만드는 대금은 결국 제가 평생 분 가락이 요구해 온 것들의 대답입니다.

만드는 사람이 불면 무엇이 다른가

거꾸로, 만드는 일은 부는 일을 가르칩니다. 관 속의 형편과 구멍의 사정을 아는 사람은 악기를 탓하기 전에 악기를 이해합니다. 이 악기가 왜 이 음에서 머뭇거리는지, 날이 습한 날 소리가 왜 가라앉는지 짐작이 가니, 연주가 한결 여유로워집니다. 악기와 싸우지 않고 악기와 의논하게 된다고 할까요.

그리고 대나무를 아는 사람은 소리를 대할 때 겸손해집니다. 이 관이 대밭에서 여문 세월과 공방에서 마른 세월을 아는 사람은, 소리 한 자락이 그저 제 재주만으로 나는 것이 아님을 압니다. 연주가 잘된 날에도 저는 속으로 대나무에게 공을 절반 돌립니다. 그 마음이 소리를 오만하지 않게 지켜 줍니다.

손과 숨의 순환

그래서 저의 하루는 순환입니다. 손이 만든 것을 숨이 검사하고, 숨이 아쉬워한 것을 손이 고칩니다. 연주하다가 느낀 아쉬움이 다음 악기의 설계가 되고, 만들다가 발견한 가능성이 다음 연주의 시도가 됩니다. 어느 쪽이 본업이냐고 물으시면 저는 대답을 못 합니다. 두 바퀴로 굴러온 수레에게 어느 바퀴가 본업이냐고 묻는 격이니까요.

옛 장인들은 본래 이렇게 살았을 것입니다. 만드는 일과 쓰는 일이 갈라진 것은 오히려 요즘의 일입니다. 저는 울산에서 공방과 국악원을 함께 꾸리며, 이 오래된 방식의 순환을 지켜 가고 있습니다. 배추를 기른 사람이 그 배추로 국을 끓이는, 그런 당연하고 든든한 살림살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