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27
김동진류 대금산조에 대하여
이규웅 · 대금 연주자 · 죽관악기 기능계승자
장맛은 집집마다 다릅니다. 같은 콩, 같은 소금으로 담가도 어느 집 장독에서 익었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집니다. 시어머니의 장맛이 며느리에게 전해지며 조금씩 그 집만의 맛이 됩니다. 산조의 유파라는 것이 꼭 이 장맛 같습니다. 저는 그 여러 장독 가운데 김동진류 대금산조라는 장독의 맛을 이어받은 사람입니다.
산조는 유파의 음악입니다. 스승이 짜 놓은 가락 한바탕을 제자가 물려받고, 제자는 그것을 익히는 과정에서 자기 숨결을 보태며, 그렇게 가락이 흘러 내려옵니다. 악보가 먼저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인 전승입니다. 그래서 유파의 이름에는 사람의 이름이 붙습니다. 가락 속에 그 사람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몸으로 받은 가락
저는 국가무형유산 제45호 대금산조 이수자입니다. 이수자라는 말은 그 가락 한바탕을 스승 앞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검증받아 이어받았다는 뜻입니다. 김동표 선생을 비롯한 여러 스승께 배우던 시절, 가락은 언제나 입에서 입으로, 손에서 손으로 왔습니다. 선생이 한 장단을 불면 제자가 받아 불고, 아니라고 하면 다시 불고, 그렇게 몸에 새기는 공부였습니다.
악보로 배우면 한 달이면 될 것을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산조의 생명은 음표 사이에 있습니다. 미는 소리, 흘러내리는 소리, 떠는 소리의 미묘한 결은 악보에 다 적히지 않습니다. 장맛의 비법이 조리법 종이에 다 적히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 적히지 않는 것을 받는 일이 사사이고 이수입니다.
김동진류의 맛
김동진류 대금산조를 한바탕 불고 나면, 저는 긴 이야기를 한 편 마친 기분이 듭니다. 진양조의 깊고 무거운 호흡에서 시작해, 장단이 빨라질수록 응어리가 풀려 나가고, 자진모리에 이르면 시원하게 몰아칩니다. 느린 대목의 농음은 깊게 우려내야 하고, 빠른 대목의 가락은 야무지게 맺어야 합니다. 우려낼 곳과 맺을 곳을 분별하는 것이 이 가락을 공부하는 평생의 숙제입니다.
유파의 가락을 잇는다는 것은 박물관의 유물을 지키는 일과는 다릅니다. 장은 독에 담긴 채로도 계속 익어 갑니다. 저의 김동진류는 스승께 받은 그 가락이면서, 제 몸을 통과하며 제 숨결이 밴 가락이기도 합니다. 다만 함부로 바꾸지 않을 뿐입니다. 바탕을 지키는 엄격함과 숨결을 허락하는 너그러움 사이 어딘가에 전승이라는 일이 있습니다.
다음 장독을 기다리며
이제 저의 남은 숙제는 이 장맛을 다음 사람에게 넘기는 일입니다. 울산의 국악원에서, 또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저는 늘 그 생각을 합니다. 이 가운데 누가 이 한바탕을 통째로 받아 갈 것인가. 가락을 잇는 일은 재주만으로 되지 않고, 그 긴 시간을 견딜 애정이 있어야 하기에, 저는 서두르지 않고 기다립니다.
산조를 들으실 기회가 있다면, 유파의 이름을 한번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가락이 사람에서 사람으로 건너온 것임을 기억하며 들어 보십시오. 같은 산조가 전혀 다르게 들리실 것입니다. 장맛을 아는 사람에게 밥상이 더 깊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김동진류 대금산조는 김동진 - 문동옥 - 이규웅 - ㅇㅇㅇ 으로 맛과 깊이를 더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