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30
정악과 산조, 두 개의 세계
이규웅 · 대금 연주자 · 죽관악기 기능계승자
한옥에도 두 가지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궁궐의 아름다움과 초가집의 아름다움입니다. 궁궐은 법도에 맞게 지어져 단정하고 장엄합니다. 초가집은 사는 사람의 형편과 마음대로 지어져 자유롭고 정겹습니다. 어느 쪽이 더 아름다우냐고 물으면 저는 대답을 못 합니다. 대금의 정악과 산조가 꼭 이 두 집 같기 때문입니다.
정악은 궁중과 선비들의 음악입니다. 느리고 유장하며, 개인의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격식과 절제를 귀하게 여깁니다. 청성곡 같은 곡을 들어 보시면, 소리가 급한 데가 없이 물 흐르듯 이어지면서도 한 음 한 음이 기둥처럼 반듯합니다. 연주자는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곡의 법도 안에 몸을 맞춥니다.
산조라는 자유
산조는 그 반대편에 있습니다. 흩을 산에 가락 조, 말 그대로 흐트러진 가락이라는 뜻입니다. 민간에서 자라난 음악이라 감정을 숨기지 않습니다. 느린 진양조에서 시작해 중모리, 중중모리를 지나 자진모리로 몰아치며, 사람의 희로애락을 그대로 쏟아 냅니다. 같은 유파의 산조라도 연주자마다 다르고, 같은 연주자라도 그날의 마음에 따라 다릅니다.
그래서 정악을 먼저 배운 사람이 산조를 만나면 당황합니다. 이렇게 마음대로 해도 되는가 싶은 것입니다. 반대로 산조부터 배운 사람이 정악을 만나면 답답해합니다. 이렇게 참기만 해도 되는가 싶은 것이지요. 저는 두 반응이 다 옳다고 생각합니다. 두 음악은 정말로 다른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 안의 두 세계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두 세계가 한 사람 안에서 서로를 길러 준다는 사실입니다. 정악으로 다져진 호흡과 자세는 산조가 아무리 몰아쳐도 흐트러지지 않는 바탕이 됩니다. 산조로 깨어난 감정의 결은 정악의 긴 음 하나에도 깊이를 실어 줍니다. 격식만 알면 소리가 마르고, 자유만 알면 소리가 헤퍼집니다.
저는 여러 스승을 사사하며 이 두 세계를 배웠습니다. 김동표 선생, 문동옥 선생, 박환영 선생, 안성우 선생께 각기 다른 가르침을 받았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분들이 제 안에 궁궐도 짓고 초가집도 지어 주신 셈입니다. 어느 한 분에게만 배웠다면 제 소리는 지금보다 훨씬 좁았을 것입니다.
오가는 즐거움
요즘 저는 아침에 정악 한 가락으로 몸을 풀고, 마음이 동하면 산조를 이어 봅니다. 정악을 불 때는 마음이 가라앉고, 산조를 불 때는 마음이 풀립니다. 하나는 수양이고 하나는 해방입니다. 두 세계를 오가는 이 즐거움이야말로 대금 부는 사람의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배우시는 분들께는 이렇게 권합니다. 어느 쪽이 내 길인가를 너무 일찍 정하지 마십시오. 궁궐도 살아 보고 초가집도 살아 본 다음에 정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리고 끝내 정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두 집을 오가며 사는 것도, 알고 보면 꽤 근사한 인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