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30
울산에서 대금을 가르친다는 것
이규웅 · 대금 연주자 · 죽관악기 기능계승자
나무를 심는 사람은 그 그늘에 못 앉을 수도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도 심는 까닭은, 누군가는 그 그늘에 앉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1996년에 울산에 자리를 잡고 대금을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저는 이 도시에 작은 나무 한 그루를 심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삼십 년, 이제 그 그늘에 앉아 이 글을 씁니다.
울산은 흔히 공업 도시라고 불립니다. 공장과 조선소의 이미지가 강해서, 국악과는 거리가 먼 도시라고들 생각합니다. 처음 이곳에서 국악원을 열었을 때 주변에서도 그런 걱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일이 고된 도시일수록 사람들의 마음에는 소리가 고픈 법입니다.
소리가 흐르는 자리에서
지금 저는 울산에서 맥 국악원과 이규웅대금공방을 함께 꾸리고 있습니다. 이 도시 한자리에 국악원이 있다는 것이 저는 늘 고맙습니다. 지나가던 분이 대금 소리를 듣고 문을 빼꼼 열어 보는 일이 지금도 심심찮게 있습니다. 그 빼꼼 연 문틈이 국악의 앞날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국악원의 수강생들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퇴근하고 오시는 회사원, 아이 학교 보내 놓고 오는 주부, 은퇴 후의 낙을 찾아오신 어르신들, 국악을 전공하겠다는 학생까지 있습니다. 저마다 다른 사연으로 대금 앞에 앉지만, 소리가 처음 트이는 날의 표정은 신기하게도 모두 같습니다. 그 표정을 보는 것이 가르치는 저로서는 월급 외 수당입니다.
지역에서 가르친다는 일
저는 영남대학교와 포항예술고등학교에 출강해 왔고, 부산대학교에서도 가르쳤습니다. 학교에서 전공자를 가르치는 일과 동네 국악원에서 일반인을 가르치는 일은 결이 다릅니다. 전공자에게는 엄격한 잣대가 필요하고, 취미로 배우시는 분에게는 넉넉한 격려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뿌리는 하나입니다. 이 소리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을 한 명이라도 늘리는 일입니다.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국악을 한다는 것에 대해 물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무대도 적고 눈길도 덜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역에는 지역의 몫이 있습니다. 서울의 명인이 열 명의 명인을 기른다면, 지역의 선생은 백 명의 애호가를 기릅니다. 명인만 있고 들어 줄 귀가 없는 국악은 반쪽입니다. 이 도시에 듣는 귀를 열어 주는 일을 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삼십 년의 열매
삼십 년을 돌아보면 열매가 없지 않습니다. 국악원을 거쳐 간 수많은 분들이 지금도 어디선가 대금을 붑니다. 전공의 길로 나아간 제자도 있고, 평생의 취미를 얻은 분도 있고, 그저 국악 공연 소식에 반가워하게 된 분도 있습니다. 크기는 달라도 모두 열매입니다. 울산 하늘 아래 대금 소리가 삼십 년 전보다 흔해졌다면, 거기에 저의 몫이 조금은 있을 것입니다.
걸어온 길
저는 앞으로도 이 자리에서 대나무를 다듬고 소리를 가르치며 지낼 것입니다. 나무를 심는 사람의 일은 심고 물 주는 데까지이고, 그늘은 세월이 만들어 줍니다. 혹시 울산 어디에선가 대금 소리가 들리거든, 그 나무가 자라는 소리려니 하고 잠시 걸음을 늦춰 주시기 바랍니다.